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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128회 사당동 더하기 25, 또하나의문화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128회 사당동 더하기 25, 또하나의문화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3. 4. 14:14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1.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신은 역사의 여신 클리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엥겔스가 한 말일겁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구요;;;) 역사란 본디 거침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기에 그 흐름에서 뒤떨어진 자들은 가차 없이 수레바퀴로 짓밟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있을 수 없고, 그 어떤 이해와 공감도 없습니다.


1-2. ‘흐름에서 뒤떨어진 자’라고는 했지만, 그 말에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의미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자 대부분이 거기에 포함되겠죠. 자기를 대변할 기록을 남기지 못한 자, 기록에 남을 정도로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한 자, 그도 아니면 그만한 권력도 없었던 자 등등.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이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러고 보면 역사라는 것, 참으로 인정머리 없어 보입니다.


2-1. 예전에 ‘마을로 간 한국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드린 것처럼, 역사학에서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꽤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미시사니 신문화사니 하는 흐름이 다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피어난 것이고, 이 책 같은 참여관찰의 전통을 흡수하여 구술사 연구를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겨납니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들어서, 연구자가 그것을 하나의 글로 정리해서 세상에 꺼내놓았을 때, 그것이 과연 온전히 연구대상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요.


2-2. 연구자/관찰자 스스로는 결코 철저하게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도 몇 번 언급된 것처럼 연구자/관찰자와 연구대상자/연구참여자는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의도와 행동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합니다. 하다 못해 수십 년을 같이 산 연인/부부도 여전히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전혀 다른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배경을 가진 두 개체가 어떻게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온전히 객관적일 수도 없습니다. 연구자가 이해하는 연구대상자/연구참여자란, 언제나 연구자 스스로의 경험과 배경이라는 필터를 거친 다음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온전한 의미의 객관성을 바라는 것은 난망한 일입니다.


2-3. 좀 더 파고 들어가면 윤리적인 문제도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대상자 역시 분명한 자기주체성과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 이를 연구와 관찰의 ‘대상’으로 삼고, 그에 대해 연구자가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로 정리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일까요. 우리가 그 연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지혜가 아무리 크다 한들, 인격과 존엄성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요.


3-1. 방송에서 끊임없이 연구자의 윤리와 성찰의 문제를 이야기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필연적으로 이런 식의 연구는 어떤 사람이 또 다른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그냥 그대로 추구하는 것이 무조건 올바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식욕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식욕을 추구하는 것이 모두 올바른 것은 아니잖습니까. 식욕을 채우려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되는 것 말입니다. 그 때 우리는 ‘윤리’를 말하게 되죠.


3-2.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대해서도 꽤 오랫동안 고민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방송에서 조프로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연구대상자’라는 표현 대신 ‘연구참여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그러한 고민 속에 나온 하나의 해법입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연구’대상’을 ‘대상화’시키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는 것이죠.


3-3. 이에 대해 현재까지의 결론은 (잠정적이지만) 현재의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쪽인 것 같습니다. 섣불리 객관적인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와 연구참여자 사이의 관계에 어쩔 수 없는, 그리고 결코 메울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죠. 그러한 한계를 충분히 인정한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나는 이러한 사람이고, 그는 그러한 사람이고,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과정에서 이러한 차이가 있었고, 저러한 거리를 느꼈다...는 점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자기고백에 가깝게 느껴지는 그러한 서술들은 단지 연구자의 생각을 메모해 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연구가 가지게 되는 윤리 문제에 대한 저자의 성찰의 결과입니다.


4-1. 그러고 보면 이게 꼭 학문 연구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고 평가를 덧붙이는 일이 다 이렇지 않나요. 친구 사이에 나오는 사담私談은 물론이고, 온라인에 뿌리고 다니는 단편적인 글들이 다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학문의 윤리라는 것도 결국에는 사람이 또 다른 어떤 사람에 대해 지켜야 하는 그 윤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4-2. 한참 쓰다보니 좀 이상합니다. 아니, 이런 너무 당연한, 그래서 하나마나한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학문이니 방법론이니 윤리니 하는 거창한 소리들을 늘어놓았나 싶습니다. 아이 참 ㅎㅎㅎ;;; 하지만 달리 말하면, 학문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의 한 종류라는 겁니다. 학문이란 거, 그저 표현이 좀 거창하다 뿐이지, 결국에는 다 사람 사는 이야기인 거고, 그래서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거라니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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