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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130회 70년의 대화, 창비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130회 70년의 대화, 창비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14. 13:21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1. 소설책에 견주었을 때, 역사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책을 읽는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상당한 수고를 요하는 일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되겠죠 ^^) 소설은 대체로 전체를 꿰뚫는 큰 서사가 있기 마련이기에 그 서사만 잘 따라가도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 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서사의 효율성을 위해 인물을 전형적으로 묘사하거나 사건의 범위를 적절하게 통제하기도 하죠. 하지만 역사책은 그렇지 못합니다. 역사 속의 사건들이란 소설처럼 극적이지도 않고, 인물이 전형적이지도 않으며, 작심하고 설명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범위가 커지기도 합니다. 역사책 역시도 무수한 사실관계를 조합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소설책과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소설책과 역사책을 읽을 때 필요한 요령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는 것은 어디까지나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다는 점을 꼭 명심하세요 ㅋㅋㅋ)


1-2. 역사책을 읽을 때는 ‘이 책이 던지는 질문’ 혹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관점’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위에서 소설책은 서사의 효율성을 위해서 인물을 전형화하거나 범위를 통제한다고 했는데, 역사책 역시도 ‘질문’과 ‘관점’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했던 무수한 사실관계를 모두 묘사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질문과 관점을 먼저 전제한 다음에 그에 맞춰서 서사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책의 진짜 의미는 얼마나 많은 사실관계를 담고 있느냐가 아니라 ‘질문’과 ‘관점’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셔도 거의 무방합니다.


2. 방송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책에 아주 새로운 사실이 들어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사실관계라는 측면에서 좀 과하게 말하자면, 남북관계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해도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통찰력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저는 이 책이 가진 힘의 원천은 세 가지 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사실상 서론에서 다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는 셈이죠.


3. 역사책을 읽는 중요한 팁 중 하나가 이겁니다. 역사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서론입니다. 일반적으로 서론은 책 전체를 구성하는 문제의식이나 전체적인 논리의 줄기를 미리 선언하는 공간입니다. 전자제품을 사용하기 전에 매뉴얼을 읽는 것처럼, 책 전체의 얼개가 서론에서 미리 제시되는 거죠. 비유하자면 본론은 사실관계의 거대한 바다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고, 서론은 그 바다에 나가기 위한 지도나 나침반 정도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론을 꼼꼼하게 읽어둬야 합니다. 그래야 본론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던져지고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죠. 반대로, 허술한 역사책은 대체로 서론이 빈약하거나, 서론에서 미리 제시한 문제의식과 논리구조를 본론에서 충실히 풀어내지 못하곤 합니다.


4-1. 저자가 서론에서 던졌던 세 가지 관점을 단단히 붙들면,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도 비로소 명확해집니다. 셋 중에서 능동적 관점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남북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리 스스로 얼마나 명확하고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하는가에 따라 남북관계의 구체적인 양상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음을 책 전체를 할애하여 논증하고 있죠. 이러한 주장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에 맞닿아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러한 저자의 관점이 향후의 대북정책에 어떻게 반영될지를 지켜보는 것도 일종의 관전포인트가 될 수 있겠네요.)


4-2. 반대로 저자가 서론에서 던진 세 가지 관점을 생략하면 이 책은 정말 심심하게 보일 것입니다. 특별히 새로운 사실관계를 제시한 것이 아니니 본론만 잘라내어 보면 사실관계만 지루하게 나열된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책의 핵심은 저자의 문제의식이 집약된 서론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5. 그런데 이러한 구조는 거의 모든 역사책에 공통으로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역사책을 읽는 요령(혹은 좋은 역사책을 고르는 요령)을 물으신다면, 저는 서론을 꼼꼼하게 읽어보시라고 답하겠습니다.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듯 잘 쓴 역사책은 서론부터 다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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