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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9회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 지식산업사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9회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 지식산업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8. 22. 11:27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1. 사람 일이라는게 정말 수가 없는 것인지라 세상에는 정말 별의별 일들이 일어납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매일 같이 반복되는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는 잊을만하면 짜릿한 승부가 벌어지곤 합니다. 예컨대, 8:0 정도로 유지되다가도 단숨에 역전되고 마는 야구경기 같은 것을 보고 있자면 세상 모를 일이다 싶죠.


1990년 6월 7일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롯데-LG의 경기에서 표를 구하지 못한 마산아재들의 열정.


잠깐 쉬어가는 마산아재 이야기 (아래 링크 클릭)


이말년의 야구배설 '만약은 없지만'

불암콩콩코믹스 '아재아재 마산아재'


1-2. 그런 일들이 스포츠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역사책 속에서도 극적인 역전승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볼 있습니다.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했던 오나라와 월나라 이야기나 열두 척의 배만 가지고 수백 척의 일본군을 이긴 이순신 장군 이야기 등은 참말로 세기의 역전극이라 할만 합니다. (물론 끔찍한 참화로 얼룩진 전쟁을 '명승부' '역전'이니 하는 단어로 낭만화하고 싶은 의도는 없습니다.)


2-1. 대역전이라는 점에서 결코 빼놓을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벌인 국공내전입니다. 국민당군에게 처절하게 개박살이 채로 공중폭격까지 맞아가면서 1km 가까이 거지꼴로 쫓겨다니던 공산당군이 불과 10여년만에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중국 전토를 제패한 스토리는 결과만 놓고 보면 엄청난 대역전극임에 분명합니다.


헐 대박.


2-2.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국공내전은 무척이나 중요한 연구주제입니다. 국민당의 패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건 공산당의 승리를 반복하기 위해서건 말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장개석은 패하였는가'라는 제목은 책이 놓인 맥락을 드러내는 같습니다. 쪽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연구하겠다는 선언은, 국민당의 패배를 다시 반복해서는 된다는 목표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어쩌면 동서냉전의 엄연한 현실 속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연구가 갖는 의의도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3. 정도로 서론은 각설하고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 글을 쓰면서 겪는 어려움 하나는 바로 제목을 뽑는 일입니다. 모름지기 학술적 글쓰기라면 제목 속에 본문의 내용을 모두 함축시켜야 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곤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희도 방송할 때마다 누누이 이야기하는 사항이지만) 요즘 나오는 제목들이란 그저 얼마나 섹시하고 자극적인가만 고민할 , 내용을 함축한다는 본연의 기능에는 다소 둔감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목은 가히 100점짜리라고 할만합니다. 제목만 봐도 본문 내용을 쉬이 짐작할 있지 않습니까?


제목은 중요합니다.


4-1. 중국을 무대로 싸웠던 거대한 조직이 충돌한 것이니 조직의 거대함만큼이나 승패요인도 복잡하고 다양할 것입니다. 거대한 작업에 임하기에 앞서 (이름에서 벌써 자신이 동아시아학 전공임을 팍팍 드러내시는) 로이드 E. 이스트만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재미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방법론을 지질학자의 작업에 비유하고 있는데, 일종의 표본 추출 작업이라고 있겠습니다. 아마 후반부에서 예시하고 있는 무너진 건물의 이야기도 그와 같은 맥락이겠죠.


4-2. 역사를 이야기할 우리는 흔히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단순화시키고자 하는 유혹에 흔들립니다. 하나의 원인에 하나의 결과만 있다면 얼마나 논리적으로 깔쌈하겠습니까. 하지만 무너진 건물이라는 결과 하나에도 원인은 엄청나게 다양하게 마련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원인들과 엄청나게 많은 결과들이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 것이 아마도 역사의 거대한 그림이겠죠. 저자가 자신의 작업을 지질학자의 작업에 비유한 것은, 책이 드러낼 있는 것이 역사라는 거대한 퍼즐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는 역사학자의 겸손인 동시에 과도한 해석을 거부하고자 하는 역사학자의 고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5.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저자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 저희가 방송에서 말씀드린 이야기들이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고 작은 원인들이 하나씩 모였을 국민당의 대역전패라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죠. 그런데 요인들에 대한 해석 문제에서 라조기님과 저의 견해가 약간 차이가 부분이 있습니다. 과연 과정에서 농민의 역할이란 어느 정도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분의 역할.


6-1. 먼저 저의 입장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농민'이라는 계층으로 대변되는 '대중'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국공내전의 양상이, 대중의 지지와 호응에 기반하여 진행되는 근대적인 전쟁의 양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사들에 대한 도덕적 훈련도 이뤄져 있었고, 농지개혁에도 적극적이었던 공산당은 농민들의 지지와 호응에 힘입어 수준 높은 군사력을 유지할 있었습니다. 반면 농민들의 지지와 호응을 상실한 국민당은 전쟁의 지속에 따르는 힘의 상실을 제대로 보충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를 노출하며 포르모사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6-2. 저는 과정에서 농민의 역할을 단순히 시혜와 호응의 관계 정도로 정리할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능동적으로 자신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을 선택한 것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라는 가지 선택지가 명확한 상황에서 어느 쪽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한가에 대한 농민들 나름의 정치적 고려가 있었고, 고려의 결과가 공산당에 대한 자발적 지지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죠. 공산당에게 보여준 농민 출신 병사(혹은 장교)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은 단지 이데올로기의 힘만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정치성', 지금의 대중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정치성' 등치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농민들이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 축적한 '정치' 역시 쉬이 무시되어서는 됩니다. 차크라바르티가 이야기했던, 정치의 '수행적performative' 측면 같은 개념을 생각하면 말이죠.


7-1. 라조기님의 경우에는 농민의 역할을 굳이 과대평가할 이유는 별로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당시의 농민들이 일생동안 겪은 경험의 범위라고 해봐야 잘해도 자신이 속한 마을의 범위를 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대중매체가 발달한 것도 아니었으니 농민들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능동적인 판단을 있었는지는 의문라는 것이죠. 오히려 저와 같은 평가는, '농민들의 지지' '국민당의 패배'라는 결과를 이미 선험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과만을 놓고 사실관계를 끼워맞추는 식의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저언혀 그렇지 않았던 과거 사실을, 후세 사람의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낭만화시키는 결과일 있다는 것이죠.


7-2. 국민당의 패배라는 역사적 결과에  있어서 농민들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잉대표시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문제입니다. 저자가 책의 서두(지질학적 방식) 말미(바람이 불어 무너진 건물)에서 밝힌 것처럼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결정짓는 요인은 엄청나게 다양한 것이고, 저자가 선택한 연구의 방식 역시 표본을 추출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는 저의 견해는 국공내전을 통해 획득할 있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단순화시킬 위험성이 있습니다.


8. 저희가 서로에게 제기한 문제와 논쟁은 사실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애초부터 책을 통해 도출할 없는 문제를 가지고 서로 입씨름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이런 식으로 계속 질문하고 논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쓸데없는 질문 같지만 독서는 질문과 답을 추출하는 행위라고 여기는 나로서는 포기할 없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설명한 책을 아무 질문 없이 덮는 일은 수동적 독서다. 따라서 독서 행위가 능동적 태도로 바뀔 책은 것이 된다. 그래서 서평이란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을 같은 질문으로 지면을 채우지만 질문이 남긴 서평은 온전한 사유로 흡수할 있다. (윤미화, 독과 , 북노마드, 2012, pp.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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