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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12회 히로히토와 맥아더, 개마고원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12회 히로히토와 맥아더, 개마고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0. 5. 21:24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1. 동아시아의 역사를 보기로 마음먹은 '역사책 읽는 집'에게, 2차 대전을 전후한 일본은 흥미로운 탐구 대상인데... 뭐 꼭 우리한테만 그렇겠습니까.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식민잔재 청산과 전쟁책임 문제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하게 되는 주제 중 하나니까요.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많은 논자들이 해방 이후 친일파와 식민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에서 현재 남한이 가진 각종 사회적 모순의 첫 출발을 잡곤 한다는 점은, 단지 흘러간 과거 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도 그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1-2. 일본의 전쟁 책임이라고 하면 여러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역사책 읽는 집'에서 다뤘던 기시 노부스케와 도조 히데키도 떠오르고, 일본의 전쟁 책임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일본의 우파들과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했지만 전쟁 이후 반성이라고는 일언반구도 없었던 이광수 같은 사람도 생각납니다. 순간적으로 일본 천황의 얼굴도 머리 속을 스쳐가지만, 뭔가 좀 찝찝합니다. 일본 천황이 일본 제국의 꼭대기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입헌군주정이라는 일본 정치의 특성상 상징적 존재에 불과했을 천황이 과연 얼마나 책임질 것이 있을까 싶은 것이죠. 20년대 식민지 지식인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다소 유약한 이미지였던 히로히토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더더욱 할 말이 마땅찮습니다. 솔직히 짜증은 좀 나긴 하지만 막상 책임을 묻자니 또 입이 궁색해지는 뭐 그런 상황...


2-1. 하지만 도요시타 나라히코의 '히로히토와 맥아더'에 나타나는 히로히토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징으로서의 의미 정도만을 가진 지금의 천황 이미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방송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는 맥아더의 앞에서 매우 노련한 이미지 메이킹 기술을 선보입니다. 모든 책임을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신하들에게 전가시키며 자기 자신은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인상을 맥아더에게 최대한 어필합니다. 책만 보면 이거 뭐 이런 연기파배우가 또 어디 있겠나 싶을 정도라서, 책 읽는 내내 꽤 짜증이 일어납니다.


아 좀 놔 봐. 짜증나잖아.


2-2. 그 뿐 아닙니다. 히로히토가 미국을 적극 끌어들이고 협력하는 것을 자신의 생존전략으로 삼은 것은 전후 일본사회의 성격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한 수였습니다. 이로서 일본열도는 미국의 '불침(不沈)항모'가 되어 동아시아에서 최대의 미군기지가 되었습니다. 일본 역시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백기 투항하는 대신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어마어마한 경제적 부흥을 이룰 수 있었죠. '일본의 전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부제 역시 이러한 내용과 정확히 조응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께는 개번 매코맥의 '종속국가 일본'을 추천합니다.)


3. 좀 더 밀어붙이면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로 돌아옵니다. 일본의 전후처리는 단지 전쟁의 책임을 일부 관료에게 뒤집어 씌워버리는 것이었을 뿐(물론 그나마도 철저하게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3회에서 다룬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전쟁 광기를 추동했던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그 어떤 성찰과 반성도 없었죠. 천황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상 천황제는 일본 국민들을 통합하고 동원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이데올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후처리 과정에서 히로히토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음으로써 천황제는 여전히 언터쳐블의 경지로 남아있습니다. 전후의 히로히토가 자신에게 씌워진 전쟁책임을 면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히로히토와 맥아더'가 던지는 이야기들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책임지라고, 이 개색갸.


4.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 이 블로그의 목적은 아니니까 이 자리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천황의 권한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일본의 천황제를 '입헌군주정'으로 분류하지만 사실 '입헌군주정'이라는 타이틀은 일본 천황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방해합니다.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패전 이전까지의 일본 천황은 지금 우리가 보는 여느 입헌군주정과는 꽤 다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지금의 일본 천황제와도 다릅니다.) 지금의 천황의 모습은 패전 이후 미국에 의해 상당히 수정이 가해진 버전입니다.


5-1. 메이지 헌법 이후 메이지 헌법과 황실전범이 규정한 천황의 권한은, 입헌군주의 그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습니다. 당장 3조와 4조에서 각각 "천황은 신성하여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고, 이 헌법의 조항에 따라 이를 행한다"라고 하여 통치자로소의 지위를 명확히 하는 한편 그 지위가 신성불가침을 명시하고 있으니까요.


5-2. 천황의 권리를 '대권(大權)'이라고 하는데, 이는 크게 광의의 대권과 협의의 대권으로 나뉩니다. 광의의 대권은 모든 국가행위에 대한 권한을 의미하고, 협의로는 법으로 규정된 권리만을 의미합니다. 협의의 대권은 다시 헌법으로 보장되는 헌법상 대권과 황실법 및 관습법으로 보장되는 헌법외 대권으로 나뉩니다. 굳이 이것저것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으니 이 자리에서는 헌법상 대권만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6-1. 헌법으로 보장된 천황의 대권은 국무대권(國務大權), 통수대권(統帥大權=군령대권軍令大權), 영전대권(榮典大權)이 있습니다. 국무대권은 국무대신의 보필을 받아 국가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권리이고, 통수대권은 군령기관의 보좌를 받아 행해지는 통수권이며, 영전대권은 국민들의 영예(榮譽)를 기리는 영전(榮典)을 수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6-2. 국무대권이란 제국의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국무대신의 보필에 따라 행사되는 권리로 그 범위는 입법과 행정 전반에 모두 걸쳐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책임은 보필을 맡은 국무대신이 지게 되며, 제국의회는 예산 심의나 검의, 질문 등을 통해서만 여기에 관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입법에 관해서는 법률의 재가, 공포, 집행에 관한 권한이 모두 속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모든 법률은 천황의 재가가 있어야만 효력을 가집니다. 그 외에도 제국의회의 개회와 폐회, 귀족원 의원(일부) 및 의장, 부의장의 임명권한을 가집니다. 행정 각 부의 관제를 정하고 문무관의 임면과 처우에 관한 권한도 천황의 것이었고, (헌법에 의한 제한은 있었으나) 재판관의 임용, 징계, 파면에 관한 권한 역시 천황의 것이었습니다. 헌법 12조에 규정된, 군의 편제와 상비병에 대한 재정 문제 역시 국무대권의 일종으로 분류되었고, 선전포고, 화친, 각종 조약 전반, 계엄 및 비상상황의 선포 역시 천황의 국무대권에 속했습니다.


6-3. 통수대권은 군대에 대한 통수권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내각제 국가에서 통수권은 내각의 권한이지만, 일본의 경우, 참모본부는 육군성이 아닌 천황에 속한 기관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군대에 대한 통수권은 육군경과 태정대신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이러한 원칙은 메이지18년에 내각제가 발족하면서도 계속 이어져 참모본부장은 내각총리대신을 거치지 않고 독립적으로 천황에게 상주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었습니다. 즉, 헌법 제정 이전에 이미 통수권의 독립이 명문화된 것이죠. 통수대권은 그 외에도 평시의 국방계획과 전시의 작전계획은 물론 육해군 병력의 사용 및 군대와 군인의 훈련, 징벌, 내부조직에 관한 사항까지 모두 포괄하였습니다.


님 좀 짱인듯.


7. 다소 길게 정리한 느낌이 있습니다만,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천황의 권한은 입법-사법-행정의 전 분야에 걸쳐 막강했고, 특히 민간에 의한 통제가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군부는 오직 천황만이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히로히토가 전쟁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이 점만으로도 명백히 드러나는 셈입니다.


8. 그나저나… 쓰고보니 재미도 없는 글을 뭐 이리 길게도 썼나 싶습니다. 이게 다 역사학도의 몹쓸 버릇이려니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ㅎㅎㅎ. (2013. 10. 5. 탕수육)


쿠오오! 간만에 의욕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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