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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4회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그린비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4회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그린비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9. 13:36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1. 1회와 2회에서는 주로 '동아시아' 시간적 범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편전쟁 혹은 청일전쟁을 시점(始點)으로 삼았다는 것은, 대충 '동아시아' 역사라는 것이 서구발 제국주의에 후달리다가 거기에 어떻게든 대응해보다가 식민지가 어쩌고 민주주의가 저쩌고 하다가 마지막엔 미국이랑 소련 넣어서 냉전이 이러저러했더라 레퍼토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1회와 2회에서 다룬 책의 범위는 해봐야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정도입니다. 아까 말한 레퍼토리를 생각하면 뭔가 사맛디 아니하는 공간적 범위라는 느낌 드시나요? 일본은 일단 대놓고 제국주의 국가였으니 () 제국주의 어쩌고 하는 얘기에서 일단 탈락이고, 중국 역시 제국주의 때문에 고생한 맞는데 우리처럼 나라가 통째로 식민지가 것은 아니라서 거시기한데다가 천안문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민주화라고 말할만한 것도 생각이 납니다. 대만도 반제국주의 투쟁이라고 하자니 마땅히 떠오르는 없네요. 아니 , 처음 시작할 때는 뭔가 대단한 평행이론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하더니 알고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구만요!


이거 한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만!


1-2. 우리는 '동아시아' 떠올리면서 그것을 공간적인 의미의 '동북아시아' 등치시켜 버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굳이 '동남아시아' 들먹이는 것이 무슨 말장난(동아시아=동북아시아+동남아시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글에서 '동아시아' 지리적으로 고정된 개념으로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 '동남아시아' 역사적 경험을 간과하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처사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한반도와의 평행이론이라는 측면에서라면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훑는 것이 배는 유익할 있습니다.


* 물론 책에는 동남아시아 외에도 대만과 일본의 이야기도 있기 때문에 책을 동남아시아에 대한 텍스트로만 독해하는 것은 너무 협소한 이해일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책 읽는 ' 책을 선택한 이유가 동남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알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책을 동남아시아를 이해하기 위한 텍스트로 간주하는 것은 '역사책 읽는 ' 만의 특수한 맥락에서 비롯한 것일 책을 읽는 일반적인 독해방식이 수는 없다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2. 사실 동남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피상적입니다. 그나마 있는 인식이라는 것도 우리 주변의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갖는 몹쓸 우월감 정도죠. 하지만 조금만 진지하게 동남아시아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한반도가 겪었던 신산한 역사가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묘하게 닮아있다는 사실을 있습니다. 일찍부터 제국주의 열강에게 빨대 꽂혀서 단물 쪽쪽 빨아먹히다가 2 대전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의 우산 아래에 드리워진 냉전의 그늘 속에 있다가 그나마 코딱지만한 민주주의도 연이은 쿠데타와 독재 때문에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5'이라는 달력이 갖는 묘한 일치감도 있습니다. 84 5월의 필리핀은 마르코스에 맞서는 선거거부운동으로 들끓었고, 90 5월의 미얀마 랑군은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습니다. 태국인들은 92 5월에 거듭된 군부쿠데타와 독재에 맞서 일어났고, 인도네시아인들은 98 5월에 수하르토를 권좌에서 끌어내렸습니다. 남한과의 평행이론을 말하기 위해서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3. 책이 갖는 최고의 미덕은 단연 '현장감'입니다. '유재현의 온더로드'라는 시리즈 이름이 말해주듯,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앞서 직접 현장을 찾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습니다. 덕분에 책에 실린 글들은 거의 매번 구체적인 현장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마치 기행문을 방불케 합니다. 이러한 글쓰기는 학자라기보다는 저널리스트에 가까운 저자의 장점을 살릴 있는 무대장치인 동시에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는 우리의 (동남아시아) 이해를 깨우치는데 무척 효과적인 전략이기도 합니다. 문체 역시 사실 관계를 충실하게 전달하면서도 유연함을 잃지 않습니다. 방송에서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흔한 여행안내서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훨씬 폼날 것이라고 말했는데, 말은 다르게 말하면 여행안내서만큼이나 쉽게 읽을 있는 책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유연함의 외피 속에 역사에 대한 단단한 성찰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방콕의 카오산로드(Khaosan Road). 이즈음에는 명성이 퇴락하긴 했지만, 1970년대 이후 동남아 배낭여행의 게이트웨이로 발전해 이윽고 성지가 곳이다. 바로 카오산로드(방람푸)에서 멀지 않은 랏차담는클랑 대로를 걸으면 네거리를 만나게 되고, 중심에 원을 이루고 우뚝 있는 기념탑을 있다. 높이 24미터의 제법 규모를 자랑하는 기념탑이지만, 보도에서는 기념탑으로 접근할 방법이 없어 탑은 마치 대양의 고도에 솟아 있는 등대처럼 보인다. 때문에 카오산 지역에 들끓는 외국인들은 물론 방콕 시민들에게도 기념탑은 그저 달력의 사진이거나 성지에 불과하다. 누구도 발을 디딘 적이 없는.

  민주기념탑이라는 이름의 탑은 바로 이름 때문에 누군가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정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대개의 여행가이드북들도 설명을 생략해놓기 일쑤이다( 없는 곳에 대한 설명은 가이드북의 예의가 아니기는 하다). (중략)

  방콧의 랏차담는클랑 대로에 민주기념탑을 세운 인물은 당시의 수상이었던 피분송크람(피분, Luang Phibun Songkhram)이다. (중략) 그는 아시아의 현대사를 빛낸 저명(?) 군부독재자 중의 하나이다. 민주기념탑의 뒤에 피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기념탑은 세계의 독재자들이 일상적으로 행해왔던 자기기만과 정신분열, 그리고 후안무치를 기념하는 독재탑으로 전락해버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기념탑에는 그렇게 간단히 내던져버릴 없는 내밀한 이야기와 의미들이 숨어 있다. (pp. 31~33.)


4. 책에서 뽑아낼 있는 키워드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우선 '민주주의' '냉전'이라는 키워드를 꼽아보고 싶습니다. 앞의 단락에서 평행이론 이야기하면서 잠깐 나왔던 것처럼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는 동남아시아와 한반도의 경험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점이라고 있습니다. 잊을만하면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태국의 경험은 남한의 경험과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이승만을 넘으니 박정희가 나왔고, 박정희를 넘으니 전두환이 나왔고, 전두환을 넘으니 노태우가 나왔고, 노태우 넘어넘어 정권교체까지 해놨더니 2MB 공주마마님까지 나오는 우리의 경험 말입니다. 저자는 태국의 '민주기념탑' 이야기하면서 '민주기념탑'이라는 이름에 들어있는 '민주'라는 단어의 의미가, 우리가 아는 '민주'와는 무척 다르다고 말합니다. 태국의 현대사를 알고 나면 '민주'라고 '민주' 아니라는 것이죠. '새누리당'이나 '뉴라이트' 새로운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한국식 민주주의' 역시 '민주주의'와는 별로 상관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말과 글이 서로 사맛디 아니하는 왜곡의 상황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두번째 키워드인 '냉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랄까요.


5. 냉전이 단지 국제정치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이 되었습니다. 냉전은 외교관들의 협상테이블에도 있었지만, 사람들 개개인의 의식 깊은 곳에도 똬리를 틀고 사람들의 인식체계를 왜곡시키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막사이사이가 필리핀에서 거둔 일시적인 성공이 냉전이 만든 일시적인 착시현상 같은 것이었다거나,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 실제와는 달리 과대하게 부풀려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있겠습니다. 막사이사이의 경우, 그가 분명 필리핀의 전성기를 이끈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미국의 반공주의적 요구를 충실히 이행할 있는 인물이었기에 가능한 일시적인 번영에 불과했습니다. 근본적인 사회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미국 덕분에 얻어낼 있었던 기득권의 순간적인 호의에 의해서만 유지될 있었던 번영이었으니까요. 방송에서 제가 읽었던 "막사이사이의 일이 끝났을 권력은 다시 지주계급의 손으로 돌아갔다."(p. 204.)라는 문장은 막사이사이의 성취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킬링필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잔혹한 학살의 대명사처럼 킬링필드가 실제에 비해 과장되게 부풀려진 '신화'임을 폭로합니다. 근본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이었던 크메르루즈가 비이성적인 학살을 자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규모가 (알려진 것처럼) 백수십만명에 달하지 않을 뿐더러 죽은 사람의 대부분도 미국의 맹폭격으로 인해 농업기반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 저자는 킬링필드( 추모시설 툴슬렝)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통한 진정한 자기성찰이란 무언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더합니다. 학살의 잔혹성만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폭로하는 것으로 우리가 얻을 있는 성찰의 여지는 무척 적다는 것이죠. 못다한 이야기 3회에서 제가 이야기했던 '성찰' 측면에서 반드시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 그리고 맥락에서 우리의 역사기념시설이 떠올라서 씁쓸했다면 그건 저의 과장이려나요? 서대문 형무소 같은 말이죠. ㅎㅎㅎ. 제가 요즘 꽂힌 주제이기도 하니 ( 길긴 하지만) 관련된 본문을 인용해봅니다.


  툴슬렝은 사실인가? 사실이다. 어느 전시물도 조작되거나 허위인 것이 없다. 고문 기구들과 수많은 사진들, 심지어는 그림과 해골에 이르기까지 모두 진품이고 현장을 기록한 것들이다. 게다가 전시물이 놓여 있고 걸려 있는 그곳은 그것들이 탄생했던 바로 현장이다.

  툴슬렝은 진실인가? 유감스럽게도 누구도 그렇게 말할 없다. 1980년대 세계인을 경악시켰던 위대한 박물관은 위조품이 아닌 진품들을 전시하고 잇지만, 진실을 찾아가는 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툴슬렝은 28 동안 오직 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해왔다. 툴슬렝은 '폴포트는 악마였고 캄푸치아공산당과 민주캄푸치아는 살인마'라는 것을 입증(사실은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운영되어 왔다. 방문객들은 무너져가는 낡은 건물에 전시된 조악한 물품들을 보면서 은연중에 박물관의 가치를 절하할지도 모르겠지만, 기실 툴슬렝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도로 조직화된 박물관이다. 예를 들어 모든 전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주얼에만 호소한다. 고문 기구, 사진, 그림, 재현된 감방, 심지어는 해골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박물관은 결코 텍스트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방문객의 사고를 극도로 단순화시키는 한편, 이성적 무장을 무의식적으로 해제한다. 당신도 툴슬렝에 간다면 똑같은 경험을 하게 것이다. 왼쪽의 입구로 걸어 들어가 오른쪽의 출구로 나온 관람객의 머리를 가득 메운 생각은 가지이다. '이런 세상에. 정말 끔찍하군.'

  (중략)

  ' 그들은 악마이자 살인마가 되었을까?'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툴슬렝에서 물음에 대한 답을 결코 찾을 없다. 왜냐하면 그런 물음은 지극히 이성적이어서, 툴슬렝은 지배하고 있는 공포와 혐오, 야만 따위의 감성적 충격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pp. 93~94.)


6.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아시아의 기억'이란 것이 단지 '민주주의' '냉전'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중국의 베트남 난민의 경우가 대표적이겠네요. 사회주의 이념과는 전혀 무관하게 중국과 베트남의 힘겨루기 때문에 수십년동안 국경 근처에서 오도가도 못한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난민들의 이야기는 자체로도 슬프지만, 놀라운 것은 수십년간 전세계를 양분했던 이념조차도 국민국가의 이기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중국과 베트남 양측에게 모두 버림받은 이들의 신산한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과연 아시아의 냉전이라는 것이 정말 냉전이기는 했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저란 녀석이 뚜렷한 답을 내기에는 아직 꼬꼬마 수준이니 일단 여기서는 정도 의문만 확인해야겠습니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진 마세요.

7. 책에는 위에서 설명한 사례들 외에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동아시아 역사의 이면이 풍부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태국의 매춘 관광 이야기나 영화 '비정성시' 통해 대만의 2.28 이야기, 일본의 적군파 이야기 등등 아직 한국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방송에서는(그리고 초두에서는) 책이 잡기에 좋은 책이라고 했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들려줄만한 이야기를 많이 얻을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혹시 아나요, 동남아 여행 가는 길에 정말로 누가 보고 흥미를 가져줄지. ^^


- 탕수육 (201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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