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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6회 북핵퍼즐, 따뜻한 손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6회 북핵퍼즐, 따뜻한 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9. 13:52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 살다보면 하나의 객체가 상황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있습니다. '홍어' '과메기' 가장 대표적이겠네요. '홍어' '과메기' 누군가에게는 이름만으로 음주욕을 불태우는 맛있는 안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비린내나고 맛대가리 없는 바다물건일 뿐입니다. '북한' '핵무기'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북한', 평소에는 우리의 잃어버린 반쪽 같은 느낌을 주다가도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때릴지도 모르는 음험한 느낌을 함께 풍기는 단어입니다. '핵무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핵무기가 가진 가공할 힘은 엄청난 공포감을 빚어내는 동시에 힘에 대한 강한 원초적 욕망을 자극합니다. '북핵'이라는 단어는 그래도 복잡한 '북한' '핵무기' 만난 단어이니 복잡하기가 가히 이맘때 아가씨 마음 수준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만 되고 나면 그거 우리 아니냐는 낙관론을 펼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공할 위력의 무기가 오용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한반도가 아작나는 것도 순식간이라며 북한에 대한 경계의 눈길을 거두지 않습니다. 그러한 낙관과 불신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아마도, 북핵에 대한 통제 가능성 여부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과, 북한이 가진 핵이 우리가 통제할 있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충분히 예측가능한 방향대로, 우리가 희망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된다면 누구도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없겠죠.


듣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니까요.


2. 미국 대외정책에서의 강경파와 온건파를 대변한다고 있는 빅터 차와 데이비드 강은, 비록 주장은 상반되어 보일지 모르지만 기실 목적은 동일합니다. 북한의 핵을 통제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 방법이 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의 공통점은 여기까지만이고, 각각의 논리를 펴나가기 시작하면, 바로 첫번째 가정부터 사람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데이비드 강은 북한의 행동이 기본적으로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빅터 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으로 북한이 언제든지 돌발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정리할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사람의 차이에 대해서는 저희가 방송에서 이야기한대로입니다.


3. 저희가 굳이 1부에서 장황하게 북핵의 역사를 되짚은 이유는 북핵문제 역시 역사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방송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북한과 핵의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된 것입니다. 원자력이라는 단어가 북한의 역사에 등장하는 것이 무려 1955년의 일이고 본격적인 능력을 가지게 것이 80년대니까, 북핵문제라는 것이 단지 최근 간의 햇볕정책이나 소위 '퍼주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는 아니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 보내줬더니 핵으로 돌아왔다' 식의 표현에는 사실보다는 과장과 선동이 섞여 있는 셈입니다.) 다시 말해, 북핵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시선을 가지고 북한이라는 사회의 역사와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대한 통찰력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북핵문제를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하고, 듣는 북한을 후드려 패고 말고의 문제로 단순하게 환원시키는 것은 아무리 해도 대증요법에 불과할 문제의 근본에 다가서는 해법은 아닙니다.


4-1. 방송에서 '외부자의 시선이 갖는 한계' 이야기했었던 것이 바로 이것과 상통하는 지점일 것입니다. 빅터 차와 데이비드 강이 표현하는, 북한 사회에 대한 의심과 호의는 공통적으로 (책이 쓰여진 해를 기준으로 하면) 기껏해야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인생에서야 10년이라는 시간은 길지만, 사회의 성격을 논하는데 있어서 10년이라는 시간은 솔까말 찰나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어느 사회의 호전성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너무 한정된 재료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죠. 물론 이런 불만들은 어떤 문제를 파악할 역사를 통해서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역사책 읽는 ' (태생적) 습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2. 외부인의 시선이라는 특징은 책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납니다. '북핵퍼즐' 저자는 남북간의 무력충돌 가능성을 논하는 와중에도 시종일관 건조하고 냉정한 톤을 잃지 않는데, 학문적 언어로 쓰여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지극히 주관적으로 말하자면) 당사자로서의 '절실함'이랄까요, 그런 감정 같은 것이 좀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건너 불구경 하는 듯한 논평자의 자세가 느껴지는 편에 가깝습니다. 핵폭탄이라든지 핵의 가공할 위력이란, 그것을 바로 가까이에 두고 사는 사람에게는 덤덤하게 말하기에는 무척이나 절박한 것입니다. "서울 불바다" 발언에 동네 가게에 있던 통조림과 라면이 동났다는 이야기는 핵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어느 순간에는 남북 간의 무력충돌을, 상황이 악화될 경우 한번쯤 (국지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충돌의 하나 정도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책을 읽으면서 아주 살짝 짜증이 때가 종종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는, 여중생 촛불 시위에 대한 빅터 차의 심드렁한 반응에서 그랬습니다. ㅋㅋㅋ)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그런 기분이 있습니다.


5. 그렇다면 책의 내용이 갖는 한계는 명확한 셈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 정확히는 제가) 책을 고른 이유는 책의 기본적인 구도와, 책을 쓰고 있는 필자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전개될 있는 상반된 주장을 공평하게 소개하고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는 구성은 우리 출판 시장에서 좀체 찾기 어렵습니다. 논쟁에 참여한 사람 역시, 사이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합의하고 명시한 후에 논지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북핵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런 태도가 지켜지기만 한다면, 북핵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는 훨씬 합리적이고 심화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 혹은 정치적인 입장 차이가 드러나는 방식은 단지 나와 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북핵에 대해서는 '수구꼴통' '종북좌빨' 만이 있을 양자 사이의 중간항은 애초부터 존재할 없는 것이니 양자 사이의 논쟁도 논쟁이 아니라 감정 섞인 말싸움으로 번져가기 일쑤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핵퍼즐' 우리에게, ( 내용 뿐만 아니라) 나와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토론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말미에 붙은 역자의 글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노골적으로 빅터 차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책의 의미를 반절로 줄여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거 이젠 좀 그만 합시다.


6. 물론 이런 지적은 우리끼리의 논쟁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북핵을 둘러싼 북한 정부와 남한 정부 모두에게도 그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 수순에 들어섰다는 기사가 오늘, 이런 생각이 부쩍 많이 드네요.


- 탕수육 (201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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