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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3회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책과 함께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3회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책과 함께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9. 13:30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1. 2012 동아시아의 정치는 그야말로 요동쳤습니다. 연초에는 북한에서 정권이 '교체'되더니 뒤이어 미국과 중국, 일본, 남한까지 정권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결과요? 보시다시피입니다. 북한과 중국, 미국의 결과는 충분히 예측가능한 것이었으니 일단 차치하더라도, (북한의 경우에는 단지 갑작스러웠던 것이 문제겠죠.) 일본과 남한의 정권 변화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과거 일본과 남한의 정치를 극우보수 일색으로 물들였던 자들의 후예가 다시 정권의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 바로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 신조와 박정희의 박근혜입니다.


1-2. 사람에게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은 비단 '역사책 읽는 ' 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에게 자신의 지역구와 정치적 영향력을 승계하는 것이 일본 정치의 상례임을 생각하면 아베 신조는 곧바로 기시 노부스케의 정치적 적자라 합니다. 박근혜 역시 대선 캠페인 내내 경제민주화를 떠들던 것이 무색하게도 대선 전날 박정희의 '잘살아보세' 신화를 들먹이며 노골적으로 박정희의 그림자를 자기의 뒷배경으로 깔았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생각하면 ( 왕창 과장해서 말해서) 2012년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해도 말이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동아시아의 향후 5년을 전망하는 있어서 좋은 참고자료가 있습니다.


2. 저자인 강상중과 현무암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가 공통적으로 만주국 경험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들이 만주국에서 겪었던 것들이 이후 일본과 한국의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잠깐 만주 이야기를 끄집어내자면 1930년대와 40년대의 만주는, 무척이나 독특한 공간이었습니다. 딱히 어느 나라의 소유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면서도 광활한 대지에 풍부한 자원이 지천에 깔린 그런 공간이 바로 만주였습니다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의 피끓는 청춘들이 땅으로 몰려들었던 것도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책에서 1930년대의 만주를 두고 "동양의 엘도라도"라는 표현을 것도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엘도라도" 몰려들었던 청춘들 중에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도 있었구요.


* 만주의 그러한 성격은 각종 문화콘텐츠의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좋은 , 나쁜 , 이상한 '이나 '다찌마와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같은 영화가 대표적입니다. 이들 영화가 과거 한국영화계를 풍미했던 '만주 웨스턴'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죠.


3-1.  부분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만주국을 둘러싼 당대 청년들의 욕망들이, 만주국을 지탱하고 기시 노부스케나 박정희와 같은 '귀태'들을 낳은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지목하는 합니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개개인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그들과 같은 '귀태' 존재를 가능케 했던 맥락이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역사책 읽는 ' 책이 단지 박정희를 신랄하게 까기 위해서만 쓰인 것은 아니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맥락으로만 책을 읽는 것은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여러 가지 사유의 갈래들을 너무 쉽게 내치는 행위라고도 생각합니다.


  기시 노부스케가 만주국으로 들어갔을 무렵, 대부분의 재만 조선인은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원했고", "만주국군 내의 조선인 부대인 간도조선인특설부대로 징집되는 것을 기피하면서 김일성을 필두로 하는 항일운동의 활약상에 가슴이 뛰"면서도 "조선인 청년들은 사회적 향상의 장(場), 기회의 장을 찾아서 만주로 향했던"[다나카 류이치(田中隆一), ⟪만주국과 일본의 제국지배⟫] 것이다. 만주는 그들에게 당시의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천지'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민족차별과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한반도로 귀환할 것인지, 중국 본토로 혹은 동남아시아로 유랑할 것인지, 아니면 "만주의 도시 하층사회로 전락할" 것인지, 그 기로에 서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재만 조선인은 "기지수(旣知數)의 사지(死地)"(=조선)와 "미지수의 사지"(=만주)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주는 입신출세나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어질 "동양의 엘도라도"로서 뜻이 있는 조선의 청년들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만주국은 그저 일본인의 '신천지'나 '이상국가'에 머물지 않고 역설적으로 식민지 조선인에게도 미답(未踏)의 프런티어였다. 물론 그처럼 강요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주체적인 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p. 56.)


  만주는 이런 박정희처럼 입신출세를 노리는 식민지 청년들에게 '차별로부터 탈출할'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만주에서 조선인은 식민지에서 감히 올라갈 수 없는 지위에까지 오르는 기회를 맛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인이 정교수로 임용된 적은 없었지만, 만주국의 최고학부인 건국대학(建國大學)에서는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이 교수로 채용되었다. 또한 식민지에서는 보통문관시험밖에 없고 일본에서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조선으로 발령이 나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이 같은 고급관료로의 지위 상승 기회 등으로 만주국은 능력 있고 야심만만한 식민지 청년들에게 '일확천금'과도 같은 '지위 역전'의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이런 '이중국적'의 상황을 활용한 조선 청년들의 '입신출세'는 한편으로는 식민지 조선인을 일본제국에 통합시키는 효과적인 기제가 되어 있었다. (p. 104.)


3-2.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신나게 씹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책이 굳이 그들이 만주로 가기 전에 겪었던 일들과 만주행을 결심하게 계기 등에 대해서 장황할 정도로 길게 서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저자의 목적이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에 대한 엄정한 비판 외에도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욕망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들의 목적이 단지 전자에만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통렬한 표현이 담겼겠지만, 저자들은 그러한 분노에 휩싸이기 보다는 냉정하게 물러서서 독자들과 함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은 만주로 향했을까?", "그들이 만주에서 돌아와 화려하게 부활할 있었던 것은 무엇 덕분일까?" 역사를 통해 사회를 통찰하고 자신을 성찰하려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져 보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또다시 그러한 조건이 반복되었을 다시는 그러한 '귀태'들이 나타나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개인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것만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도출할 없음은 물론입니다.


3-3. 저는 그런 점에서 말미에 붙어있는 박한용 선생의 글에서 아주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물론 자체에 대해서는 저나 라조기님 모두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박한용 선생이 그간 쌓아오신 많은 업적들은 무척이나 훌륭한 것들이고 저희들 역시 연구에서 많은 가르침과 영감을 얻습니다. 단지 저희가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글이 위치에 있음으로 해서 발생하는 효과입니다. 박한용 선생은 책을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비롯한 만주국 인맥) 정체를 폭로하고 그들을 준엄하게 비판하는 텍스트로 독해하였습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박한용 선생의 그러한 독법은 충분히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박한용 선생 정도의 명망을 갖춘 분이 쓰신 글을 통해서 책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유의 가능성이 다소 제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4-1. 기왕 이야기 나온 김에 박정희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3 방송이 나간 이후에 들은 여러 의견 중에서 박정희에 대해서 너무 호의적으로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점에 대해서는 뭐라고 이야기(변명?) 덧붙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희 방송에서 박정희에 대한 준엄한 비판을 기대하신다면, 아마도 방송은 아예 들으시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방송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일은 정말 어지간해서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야 시의적절한 줄서기 혹은 전향선언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단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동아시아 역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단지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4-2.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얻을 있는 것이 감정적 카타르시스 외에 무엇이 있을까요. 기껏해야 피아식별 정도나 있겠죠. 역사가 단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면 그런 역사는 치열한 선거판에서나 통용되는 것이지, 통찰과 성찰을 위한 수단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박정희를 신나게 깠지만 2013년에 우리가 목도한 것은 딸이 활짝 웃으며 다시 청와대로 복귀하는 모습입니다. 독재자의 숨통은 끊어졌지만 정신과 후예들은 30년이 지난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박정희에 대한 감정적 비판 이상을 넘지 못했으며, 박정희의 시대( 후예들) 대해서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의 선택의 이유를 분석하는 것은, 박정희의 선택을 변명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하기 위한 단추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정희를 뿔달린 괴물로 만들어서 신나게 조롱하고 욕하는 것이 아닙니다. 박정희 자신을 추동했고, 박정희가 우리에게 심어놓은 '사유와 욕망의 구조' 무엇인지 탐구하고, 그것을 깨부술 있는 방책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작업을 생략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박정희의 후예가 활짝 웃으며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목도해야 것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보자는 거죠.


4-3. 사실 억울한 것도 있습니다. 그간 우리가 골라온 책들 제목만 훑어봐도 우리가 박정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확실한데 말입니다. ^^


5-1. 만약 저자의 의도가 박정희의 역사적 기원을 따지고 그것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에만 국한되었다고 하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만주국과 박정희 정권기 남한(그리고 전후 일본) 경제개발이 형태상으로 상당히 유사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중공업 위주의 발전전략을 채택했다는 점이나 만철 조사부, 경제기획원, 통산성으로 대표되는 전문관료집단의 존재 등은 삼자 간의 공통점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공통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연속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박정희의 예만 들더라도, 만주국에서 기껏해야 하급 장교에 불과했던 박정희의 경험만을 놓고 그것이 이후 남한의 정치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5-2. 만주국과 박정희를 쉽사리 연속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만약 만주국의 경험을 박정희 정권과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박정희 정권기의 정치와 경제를 식민지 시기와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논리를 쌓아버리면 우리는 무척이나 익숙한 어떤 논리틀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궁극적으로는 이후 남한의 경제발전의 기원을 식민지 시기의 경험에서 찾는 논리로 귀결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기 박정희의 경험을 이후 남한의 경제발전과 연속시키는 것은 외형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제가 무척이나 단순무식하게 논리를 정리한 측면도 없지 않고, '근대'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아닙니다만, 글쎄요, 텍스트를 단지 박정희에 대한 비판서 정도로만 읽게 되면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같습니다.


6. 그런 점에서 3회는 저희 입장에서도 아쉬움이 무척 많은 방송입니다. 방송을 다시 들어보면, 책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을 우리 스스로가 닫아버리는 듯한 언사를 많이 늘어놓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방송 말미에서 장난스럽게 '예언서' 운운한 것은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ㅎㅎㅎ.) 그러고보면 기시 노부스케나 박정희나, 아직 시행착오 과정에 있는 방송에서 다루기에는 비중이 인물이었던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미 나가버린 방송이니   있나요. 앞으로도 죽어라고 열심히 읽고 읽고, 죽어라고 이야기하고 토론해서 계속 나은 방송 만드는 수밖에요.


** 사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움, 아니 잘못은 저자소개였습니다. 책날개에 있는 저자소개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로 방송을 셈이니 잘못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닙니다. 저자께서 직접 달려와서 싸닥션에 죽빵을 날리셔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근본 없는 녀석들이 방송을 너무 편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리를 빌어서 저자인 현무암 선생님께 사과드립니다.


- 탕수육 (201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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