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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2회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 창비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2회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 창비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5. 16. 12:47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 지난 제1회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동아시아'라는 것이 실은 근대에 들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했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은 정말 직접적입니다. '열가지 사건'을 통해 동아시아가 만들어졌다고까지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그 전에는 동아시아가 없었냐...라고 말하실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간적인 의미에서의 동아시아야 판게아가 쪼개져서 아시아대륙이 생겨난 수십 수백만년 전부터 있던 거니까 이미 오래 전부터 동아시아는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중화질서가 해체되고, 서구발 '근대'가 가한 충격에 흔들리다가, 제국주의에 핍박받기도 하였고, 민주주의를 얻기 위한 지난한 과정을 겪어온 끝에 형성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그 '동아시아'는 분명 근대 이후에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네, '역사책 읽는 집'이 말하는 '동아시아'는 당연히 후자입니다. 지리적인 경계가 아니라, 역사적인 구성체라고 보시면 얼추 맞습니다.


2-1.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샤샤샥 훑는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느낌은 제1회에서 다룬 '끝나지 않은 20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가지 큰 차이는 시점(始點)이겠죠. '끝나지 않은 20세기'가 동아시아의 출발을 청일전쟁에서 찾은 반면 이 책은 아편전쟁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둘 다 청나라가 패배했다는 점, 다시 말해 중화질서의 패자(覇者)가 패자(敗者)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2-2. 아편전쟁 이전까지 중국이 전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났습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룡은 전세계의 물산이 생산되는 거대한 공장이자, 전세계의 은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흡입구'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주경철의 '문명과 바다' 같은 책이 탁월합니다.) 하지만 아편전쟁에 이르는 과정과 그 결과는 중국이 더 이상 세계경제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대량의 아편으로 사회는 병들었고 국부는 유출되는데다가 군사적으로도 패배했으니까요.

 

2-3. 하지만 아편전쟁 패배 하나만으로 중화질서가 단숨에 해체되었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아편전쟁 이후에도 중국은 여전히 상국이었고, 우주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청나라의 황제였던 도광제는 전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패배도 그저 변방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 정도로만 여겼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이 사건만으로 중화질서의 해체를 말하는 것은 다소 과장된 해석일 수도 있죠. 진정으로 중화질서가 엎어졌다고 하려면, 중화질서의 한참 밑바닥에 있었던 일본이 중화질서의 맨 위에 있던 청나라를 꺾어버리는 청일전쟁 정도는 돼야겠죠.

 

2-4. 재반론의 여지는 당연히 있습니다. ^^ 청일전쟁을 시점으로 해버리면 그 이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 예컨대 일본과 조선의 개항이나 메이지 유신, 양무운동, 갑신정변 같은 사건들이 시야에서 빠져버리거든요. 그 사건들 역시 앞서 말한 '동아시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이쯤 되면 슬슬 헷갈립니다. 아니 대체 어느 쪽이 맞는 걸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2-5. 잘 생각해보면 이 두 주장은 한 쪽이 맞으면 다른 한 쪽이 틀리는, 그런 배타적인 관계는 아닙니다. 아편전쟁이 중화질서에 금이 가는 소리였다면, 청일전쟁은 중화질서가 완전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소리였던 거겠죠. 한참 열나게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치고는 좀 맥없는 결론이긴 하네요. ^^

 

3-1. 책을 다 읽고 나면 (혹은 목차를 싹 훑어보면) 좀 재미있는 것이, 전체 열 가지 사건 중에 전쟁이 무려 일곱 개입니다. (아니 뭐가 그렇게 열받는 일이 많았길래 잊을만하면 싸움질이었을까요.) 라조기님은 이를 두고, 이 책이 지나치게 동아시아를 갈등 위주로만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어쩌면 이 책이 열 가지 '사건'에 주목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이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건'이라고 할만한 임팩트라면 전쟁만한게 또 없으니까요. ^^

 

물론 모든 사람에게 다 그런건 아닙니다.

 

3-2. 동아시아의 형성 과정이 전쟁으로 점철된 것이었다는 분석은, 그 과정이 그만큼 간단치 않았으며, 그 결과물 역시 (전쟁이 주는 충격파 때문에) 아주 예쁘장한 모양은 아닐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현재진행형인 동아시아의 많은 갈등들은 대개가 이 시기에 이미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들입니다. (다만 이렇게 형성된 동아시아의 근대를 두고 '왜곡'이나 '기형' 같은 표현을 갖다 붙이는 것은 좀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근대'의 원형을 서구로 상정하는 셈이니까요.)

 

3-3. 그런 점에서 작금의 동아시아가 겪고 있는 각종의 갈등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동아시아의 근현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네, 자연스럽게 제1회에서 말했던 것과 이어지는 셈이지요.

 

4-1. 동아시아의 갈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구성이 매우 특이합니다. 열 가지 사건을 이야기 하면서 이 사건이 각각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교과서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각기 어떤 돋보기를 들이대고 있는지를, 이 책은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니, 서로의 다른 관점을 드러내서 어떻게 갈등을 해소한다는 거야?! 라고 되물으실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런 시도가 동아시아의 갈등을 풀기 위한, 무척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4-2. 저는 갈등을 극복하는 가장 첫번째 단계는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점에서 공감하고 또 어느 점에서 생각이 다른지를 알아야, 생산적인 결론을 위한 건강한 토론도 가능한 거겠죠. 저희가 방송에서 이 책이 역사교과서의 보조교재로 무척 유용할 거라고 했던 것은 그런 뜻에서 비롯합니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진지하게 갈등의 해소를 주문할 요량이라면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대에 대한 이유없는 적대감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의 이해의 폭을 넓혀주도록 애쓰는 것이겠죠.

 

4-3.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이 동아시아의 민주화라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낱낱으로 떼어놓고 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책 전체의 구성으로 따진다면, 민주주의의 발전이 곧 동아시아의 화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뉘앙스를 묘하게 풍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독재자들은 동아시아의 갈등을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곧잘 써먹었습니다. 굳이 일일이 예를 들 필요도 없겠지요. 그러고보면 동아시아의 바람직한 미래를 구상하는 과정은 곧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과정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ㅎ. 너무 모범답안 같은 결론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이 당연하고 진부한 이야기도 제대로 안 되는 게 작금의 상황 아니던가요.


- 탕수육 (2013.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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