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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26회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 삼인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26회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 삼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 29. 00:17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

2007년에 나온 책이 2014년에도 그 적시성을 잃지 않았을 때 우리는 보통 글쓴이의 통찰력에 감탄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감탄은 감탄대로 둔다 하더라도) 이 책이 진작에 용도폐기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를 읽을 때의 기분이 그랬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책에서 짚어내고 있는 두 가지 현상이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관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현상 중 하나는 제목이 말하고 있는대로 한중일 삼국이 겪고 있는 갈등 상황이죠. 역내 무역이다 뭐다 해서 서로 돈다발을 주고 받기는 하지만 등만 돌리면 욕하기에 바쁜 세 나라의 관계는 2014년에도 여전합니다.


또다른 하나는 책에서 사회유동화라고 거창하게 말하고 있는, 국가 차원의 복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사회가 불안해지는 현상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조정래가 <정글만리>에서 적자생존의 정글로 묘사했던 중국도 잘난 몇놈들 빼고는 살기가 참 어려운 사회가 된지 오래입니다.


2.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동북아시아의 3국, 한중일이 내셔널리즘을 내세워 서로 충돌하는 이유를 탐구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에서 쏟아내는 혐한, 혐중, 반일의 감정이 도대체 무엇을 원천으로 삼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답으로 내 놓은 것이 태평양 전쟁의 기억 뭐 이런 게 아니라, '세 나라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변동, 또는 불안'입니다. 아주 오래된 질문을 던져 놓고, 좀 새롭다 할만한 대답을 한 셈이죠.


저자는 지금 관찰되고 있는 삼국의 내셔널리즘을 과거 고도성장기의 그것과는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민족 똘똘 뭉쳐 경제발전 이룩하자 따위의 구호가 먹혔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잘살아보세 외치며 중산층을 향해 달리던 때, 그 달음박질을 재촉하기 위해 호출된 것은 '민족'이었고 '국민'들은 그걸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해일이 태평양을 건너 대륙까지 흠뻑 적신 오늘날, 다 같이 잘살아보자는 이야기는 참 무망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사회는 쪼개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을 미워한다는 말은 더 이상 생명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지금은 '개별불안형 내셔널리즘'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회로부터 버려진 개개인이 마음 둘 곳 없어 헤메다가 인터넷에 접속, 직업도 가족도 없이 방황하던 마음을 키보드에 담아 옆나라 십색기들 미워 죽겠어 라며 폭발시키는 뭐 그런 느낌. 이 책에 따르면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를 미워하는 것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갖고 있는 집단적인 기억 때문이 아닙니다. 각 나라 내부에 존재하는 계급간, 세대간 모순이 진짜 이유 되겠습니다.


3.

불황이 파시즘의 부엽토쯤 된다는 저자의 얘기가 그렇게 낯설지 않습니다. 인터넷에서 중국인 죽어라 악플을 다는 청년 A(26세)의 마음 속에 내년에 졸업해야 되는데 도무지 취직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불안이 잠자고 있으리라는 지적도 뭐 그래, 그렇게 이해해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한중일 삼국의 갈등이 각국의 내부 문제 때문이라고 마침표를 찍기에는 뭔가 좀 찝찝하지 않나요? 저는 좀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 찝찝함이 저만의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그러니까 2007년에 한겨레 신문도 영 찝찝한 서평을 실었습니다. "그렇다면 3국의 민족주의 문제는 각자 국내문제만 걱정하면 된다는 것인가. 인터넷 세대들이 서로 미워하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부른 희화화된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가. 중국·한국의 반일감정이나 시위를 ‘국내문제 호도용’이라며 일본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온 일본 우익들과 다카하라가 다른 점은 어디까지인가." (한승동)


4.

약간 딴 이야기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요나하 준이 쓴 <중국화하는 일본>이 떠올랐습니다. 서른 쯤 하는 젊은 저자들의 책이었기 때문만은 (요나하 준은 79년생,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76년생이죠) 아니었던 것 같고요. 얼핏 전혀 달라보이는 두 책의 출발점이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점'은 다카하라 모토아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본의 '사회유동화'가 될 것이고, 요나하 준의 말대로라면 '중국화'입니다.


소위 '회사주의'가 쇠퇴하고 사회가 불안해지는 현상을,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인터넷 환경에서의 국수주의의 분출이라는 현상과 연결시켰습니다. 한편 요나하 준은 역사책을 열심히 본 뒤에, 그래! 이건 일본이 중국화하는 거야! 하는 살짝 뜬금없지만 출판 후 꽤 많은 역사 덕후들을 열광시킨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죠. 전혀 교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책을 같이 읽으면서 어 이런건 뭔가 비슷한데 하는 생각에 이르는 것도 재밌습니다.


(분량상 <중국화하는 일본> 이야기를 자세히 할 수는 없겠습니다. 중국화라니 이게 뭔소리야 하실 수도 있겠으나.. 같은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서로 다른 주제의 책 정도로 생각해주시고 시간 날 때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한번 다루는 것도 좋겠다 마 그리 생각 중입니다.)


5.

이 책의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는 한중일 삼국 인터넷 세상의 내셔널리즘 대폭발을 꼭 '우경화'로 봐야 되냐는 질문 속에 있습니다. 이념 지형도 같은거 그릴 때 보면 극단적인 민족주의, 국수주의 이런 건 보통 오른쪽에 위치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그렇게 전통적인 이념 구분의 잣대로 이 현상을 다 담을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게 오늘날 한국사회를 비출 때 유의미한 것은 꼭 민족주의라는 타이틀을 떼더라도 일베니 뭐니 하는, 상식적으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극우경화'에 가까운 현상들이 인터넷에서 관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게 정말 좌우대립이니 우경화니 하는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탕수육은 이 책이 주는 교훈을 십분 활용하여 일베 현상을 분석한 글을 써서 학술잡지에 싣기도 했습니다. 전문을 링크시키고 싶은데 탕수육이 이놈아 할 것 같아서 포기...


6.

이 책이 좀 박물관 속 유물이 되도록;; 한중일 삼국이 동아시아 시대에 걸맞는 관계를 맺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역내 교역 규모는 겁나 큰데 역사적 정치적 협력은 전혀 안되는 동네가 바로 바로 동아시아 어쩌구 듣는것도 이제는 좀 지겹습니다.  


- 라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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