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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16회 오키나와 노트, 삼천리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16회 오키나와 노트, 삼천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 15. 10:53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 방학특집이었기에 게스트가 책을 선정할 권한을 가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역사책 읽는 집의 독서 리스트에서 이 책은 좀 도드라져 보입니다. 한국어판 출판이야 2012년이지만 저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이 글들을 쓴 게 40여년 전 일이니, 이 책이 지금 우리에게 시의적절할리가 없죠. (오히려 역사적 사료에 가까울 지경입니다. ㅎㅎㅎ) 196, 70년대의 맥락을 잘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은데다가,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엄밀한 의미의 역사책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니 대체 무슨 연유로, 2012년에 이 책이 한국에 번역되어 나왔으며, 2013년의 역사책 읽는 집(과 마구로님)은 이 책을 집어든 것일까요.


대체 왜죠?


2. ‘섬’이라는 공간이 풍기는 뉘앙스는 묘합니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작은 조각 땅인 섬은, 육지와는 분리된, 고립된 공간입니다. 그 덕분에 늘상 섬이란 육지와는 분리된, 어떤 이질적인 공간처럼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이 좋아서 ‘이질적’이지 그것의 역사적 실상은 차별이나 편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섬은 언제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변방 정도였으니까요.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가 그러했고, 일본과 아이누인의 관계가 그러했죠. (고려시대까지 제주도 역시 외국이었습니다. 제주도 출신자들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과거에 응시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죠. 그렇다고 해서 제주도가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해 마시길.) 오키나와 역시 그러합니다.


3. 동아시아의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오키나와가 고래적부터 일본의 일부분은 아니었음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오래 전부터 오키나와는 류큐(琉球)라는 독립된 왕국으로,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도 독립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중화질서에 편입된 정도가 일본보다 더 크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오키나와를 단순히 일본의 부속 도서의 일부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랬던 오키나와가 일본의 영토로 편입된 것은 메이지 유신 시기입니다. (물론 17세기부터 사쓰마번에 조공을 바치기는 했지만 이 때도 왕국으로서의 독립성은 유지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오키나와가 걸어온 역사에는, 국민국가의 변방이 짊어져야 할 어려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2차 대전 때는 섬 전체가 일본의 태평양 전진기지로 쓰였고, 2차 대전 이후에도 미군의 군사기지로 기능해야 했습니다. 오키나와에는 동북아시아 최대의 미군기지인 카데나 공군기지와 후텐마 해병대 기지가 자리하고 있고, 아직도 전체 면적의 20% 정도가 미군기지입니다. (많을 때는 85%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많이 줄어든 게 이 정도란 거죠.)


4. 그간 우리가 읽었던 책들에서 잘 드러나듯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하는 무게와 부담은 결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습니다. 전쟁이건 독재건 그것이 가하는 고통과 책임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고, 역사가 드리우는 그늘이란 언제나 특정한 지점에 집중되는 법입니다. 우리가 오키나와를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5.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은 아마도 일본에게는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소위 ‘핵 우산’ 아래에서 줄어든 국방력 부담을 고스란히 경제 개발 쪽으로 투여할 수 있었고, 2차 대전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는데 필요한 시간도 그만큼 단축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미국과의 동맹에도 그늘은 있었습니다. 일본의 정치와 경제는 미국의 동아시아 구상 속에 종속되어버렸고, 막대한 대지가 미군기지 부지로 사용되었습니다. 환경오염과 미군 범죄,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사법적 한계들이 미군기지와 함께 일본인들에게 부과되었습니다. 그러나 냉전 기간 내내 이 모든 문제들은 문제가 아닌 것처럼 치부되었습니다. 냉전과 경제개발이라는 목전의 과제가 중요하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그 문제들이 뭇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땅에 몰려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6.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꽤 중요합니다. “본다”는 것은 그 대상이 바로 내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고, 그 때문에 그 아픔과 고통에 공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면,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범한 독일인들이 나치에 의한 미증유의 대학살에 동참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로, 피해자들을 가해자 독일인과 철저하게 분리시킬 수 있었던 관료제를 꼽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심안(心眼)을 얻는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만은...


7. 오키나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키나와에서 일어나는 미군기지 관련 문제들은,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들리는, 그저 어디 먼 나라 이야기 쯤으로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으로 편입된지 200년도 채 되지 않은 이질적인 공간이다 보니 국민으로서의 동질감 그닥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굳건한 미일동맹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작은 문제들 정도로 여겨졌을 수도 있구요. 그런 침묵 속에서 오키나와는 미일동맹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수십년을 허덕여야 했습니다.


8. 오키나와는 오키나와에만 있지 않습니다. 한미동맹의 그늘은 한반도 각지의 기지촌에도 드리워져 있고, 지금 제주 강정에도 드리워져 있습니다. 뭐 꼭 한미동맹 뿐인가요. 대도시의 전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고압 송전탑은 전기세 아깝다고 전기불도 아껴 켜는 밀양 할머니들의 터전 위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다시 1번으로 돌아가서) 2012년에 이 책이 한국에 번역되어 나왔으며, 2013년의 마구로님이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겠죠.



- 탕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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