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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는 집

제17회 조선을 떠나며, 역사비평사 본문

못다한 이야기

제17회 조선을 떠나며, 역사비평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2. 17. 17:49



♪ 역사책 읽는 집 듣기 : 팟빵 ♪


1. 역사를 공부하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되거나, 그저 그러려니...하고 생각하고 있던 고정관념이 흔들릴 때 느껴지는 묘한 지적 쾌감 같은 것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다른 조합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2-1. 1945년 8월 15일,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요. 결코 망할 것 같지 않았던 일본 제국주의가 그렇게 한 방에 훅 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조선인들은 조선인대로 벅차오르는 해방의 환희에 들떴고, 일본인들은 일본인대로 '씨발 좆됐다' 상황이었겠죠. 네이트와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 중인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웹툰의 초반부는 그러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 보러 가기


2-2. '인천상륙작전'의 가장 큰 미덕은 상투적이지 않다는 데 있을 것 같습니다. 일제시대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은 대개 양 극단에 치우치게 마련입니다. 혹자는 (특히 ㄱㅎㅅ교과서 쓰신 분들...) 일제시대라고 해서 딱히 더 살기 힘들었던 건 아니라는 식으로 무덤덤하게 이야기하고, 또 어떤 분들은 독립운동의 장구한 역사를 비분강개한 어조로 이야기하면서 일제의 폭압만을 강조하곤 합니다. 물론 이 두 이야기에는 모두 일정정도 역사적 진실이 반영되어 있고, 따라서 단순히 각하해버릴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인식이 저 양 극단으로만 과하게 치우칠 경우에 어김없이 삑싸리가 나는 법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은 해방공간을 이야기하면서 그 양 극단에 치우치기보다는 약간은 비겁하고 치사한 인간들의 군상을 현실적으로 드러냅니다. 그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이 보여주는 역사란, 단순한 소재를 넘어서 인간사에 대한 복합적인 성찰을 가능케 하는 유력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2-3. 이연식의 '조선을 떠나며'가 그리는 해방 직후도 그와 비슷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조선을 떠나며'를 참고한 부분이 있기도 하구요.) 제국 일본이라는 든든한 뒷배경을 상실하고, 무기력한 개인으로 내던져진 재조일본인들이 보여주는 날것 그대로의 인간상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만으로도 '조선의 떠나며'의 미덕은 차고 넘칩니다.


3.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같은 재조일본인이라고 하지만, 어마무시한 지주부터 부쳐먹을 땅뙈기나 얻어볼까 해서 온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 속에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쉬이 평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일본 제국주의라는 (꽤 든든한) 뒷배경이 있었다는 점까지 깡그리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다카사키 소지의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재조일본인 개개인의 성향과는 별개로 그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본인의 위치를 본인이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4-1. 앞서 잠시 설명드렸지만, 일제시대라고 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마땅히 더 힘든 것은 아니었다는 식의 주장을 요즘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지배자들에게 수탈당하는 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나뉜 이후로 언제나 그래왔던 것이니까요. 하지만 과연 그렇게 쉽게 정리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식민지 시기에 조선인들이 감내해야했던 수탈의 강도는 확실히 다른 시기의 그것에 비해 강했습니다. 이전의 봉건지주제 하에서 징수의 대상은 쌀에만 국한되었지만 일제는 겨울에 심은 보리까지 철저히 수탈해 갔고, 식민지의 조선인들은 그 대신 만주산 좁쌀로 겨우 연명해야 했습니다. 봉건지주제의 모순은 분명 심각한 것이었지만, 식민지 시기에 민중은 그보다 더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렸던 셈입니다.


4-2. 식민지 시기 조선이 '근대성'을 경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코 식민지를 통해 중세의 한계가 극복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신분제의 질곡은 여전히 관습의 영역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고, 거기에 민족적 차별까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제도적·물리적 영역에서 철저히 이뤄진 민족적 차별 때문에 식민지 조선을 '이중사회'라 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식민지 시기에 조선인들에게 대단한 기회가 주어졌던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조선인과 일본인은 여러가지 면에서 차별이 심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에서도, 조선인 젊은이들이 만주로 몰렸던 이유 중 하나로 이 점을 꼽은 바 있습니다.) 책에도 잠깐 삽화가 나오는 것처럼 일본인의 거주지역과 조선인의 거주지역은 일단 물리적으로도 크게 구분되었습니다. ('식민지 이중사회론'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대신문] 하나 된 역사학회, 식민주의를 되돌아보다


5. 그렇기 때문에 '조선을 떠나며'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단지 '아, 그 때 이런 일도 있었구만~'하는 식의, 역사적 가십거리 정도로만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동아시아 제국주의 질서에 의해 탄생한 재조일본인 집단이, 제국주의 질서가 해체된 이후에 맞닥뜨려야 했던 그 많은 일들은 제국/식민지, 지배/복종, 수탈/발전 등의 이분법으로 단순화되기 쉬운 우리의 인식에 풍성한 생각의 거리를 던져줍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과거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그 때의 그 "교훈"이란 잃어버린 영토에 대한 상실감이나 타민족을 무력으로 지배한 것에 대한 자부심 같은 근거없는 허상들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삶에 대한 풍성한 성찰일 것입니다.


- 탕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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